옛날에는 불이 귀했습니다.
사람들은 불을 만들기 위해 부싯돌을 이용했습니다. 관솔에 불을 붙여 불씨를 만들었습니다. 만든 불씨는 집집마다 화로에 보관하여 수시로 불을 붙이는데 썼습니다. 말하자면 성냥 대신이지요.
어느 마을에 불씨를 잘 보관하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화로에 담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잘 살리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조부님 때부터 물려받은 불씨가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가씨의 재주 덕분이었습니다. 아가씨는 정성을 다해 화로의 불씨를 돌보았습니다.
이웃 마을에 불씨를 잘 꺼뜨리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화로에 불을 잘 살리는 며느리를 하나 얻고 싶다.”
이 말을 들은 이웃집 사람이 귀띔을 하였습니다.
“아랫마을에 혼자서 대대로 물려온 화롯불을 잘 살리는 아가씨가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이 화롯불 아가씨를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였습니다. 친정에서는 몇 대째 불씨를 살렸다는 화롯불아가씨가 아침에 정성을 다해 화로에 불씨를 담아놓으면 저녁에 꺼지고 말았습니다.
“이상해요. 아부님, 불씨가 날마다 꺼져요. 저는 정성을 다해 돌보는데도 그럽니다.”
화롯불아가씨 눈가에 눈물이 글썽글썽 하였습니다.
“긍께. 이상헌 일이다. 느그 집에선 불을 잘 담았는디 으째, 이리 불이 꺼진당가 모르겄다.”
시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얼굴이 꺼진 불씨처럼 어둡습니다.
화롯불아가씨는 시아버지 보기가 민망하여 얼른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허다. 뭔 일이 있긴 있능가부다. 그러코롬 잘 담던 불씨를 맨날 꺼트리니 도통 알 수가 없다. 한번 지켜보자.’
화롯불아가씨는 곡식을 까부는데 쓰는 체를 쓰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화로에 불을 담아 바닥에 두었습니다. 화로가 잘 보이는 나뭇단 뒤에 숨었습니다. 화로에 담은 불씨는 잘 타고 있었습니다.
화롯불아가씨는 숨소리도 죽이며 가만히 숨어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불씨가 날마다 꺼지는지 오늘은 꼭 이유를 밝혀내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덜컥 소리가 났습니다. 뒷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화롯불 아가씨의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긴 머리를 등에까지 총총 땋아 내린 총각이 발소리를 죽이며 화로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이목구비가 깍은 밤처럼 잘 생긴 총각이었습니다. 총각은 바지춤을 내리더니 오줌을 철철 싸기 시작하였습니다. 희죽 웃더니 바지춤을 올렸습니다. 발소리를 죽이며 뒷문으로 사라졌습니다.
화롯불아가씨는 총각이 어디로 가는지 부엌에 난 창문 틈으로 보았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총각은 뒤뜰에 있는 가죽나무 밑으로 가더니 연기처럼 그 가죽나무 밑으로 사라졌습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습니다.
화롯불아가씨는 이 사실을 시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님, 가죽나무 밑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겄어요. 분명 귀신 같은디요.”
“니가 본 것이 사실이믄 요상허긴 요상허다.”
시아버지는 식구들을 불렀습니다.
“뒤안에 있는 가죽나무 밑에 불씨를 꺼트리는 귀신이 들어있다고 헌다. 며늘아가가 봤다고 허니 우리 한번 파보자.”
시아버지와 가족들이 달려들어 가죽나무 밑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쯤 파내려갔을 때 괭이와 삽이 단단한 쇠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시아버지는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여 흙을 살살 걷어내었습니다. 시아버지가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니 검은 무쇠솥이다.”
화롯불아가씨가 검은 무쇠솥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노오란 광채를 내는 금덩이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아버님, 금이예요. 금!”
“시상에 무슨 일이당가. 금덩이가 굴러오다니.”
“이 금덩이 묻힌 것을 알려줄라고 그 총각 귀신이 불씨를 자꼬 꺼뜨렸능가봐요.”
화롯불아가씨는 금덩이보다 밝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며늘아, 니가 복덩이다. 니가 정성으로 불씨를 살링께 복을 준거다.”
그 후 화롯불 아가씨네 집은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화롯불아가씨는 더욱더 정성을 다해 화로에 담은 불씨를 돌보았다고 합니다.
(참고 도서 : 호남구전 자료집 6, 조희웅 노영근 임주영 엮음, 장흥군 회진면 편)
전래동화 재화자의 말
호남구전자료집에 실린 자료들은 현지조사를 통해 생생하게 채록된 설화들이다. 언젠가 한번은 이 구전자료집에 실린 설화들을 전래동화로 재화하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논문 지도교수님이었던 조희웅 교수님에게도 말씀드렸던 적이 있다.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시작의 삽을 들게 되었다. 사라져 가는 전승자료를 어렵게 채록하여 한국의 구비문학 영역을 확장하여 주신 조희웅 교수님과 이 연구 조사에 참여하신 분들에게 늦게나마 감사드린다. 본 필자는 구전자료집에 실린 설화들이 방언과 제보자의 말이 그대로 표기되어 독해에 어려움이 있었고, 전래동화로 재화할 수 있는 설화를 찾아내는 일도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음을 피력한다.
이번 재화의 기본 방향은 가급적 자료집에 수록된 설화의 내용에 충실하되 동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재화자의 창작의 폭을 확대하고자 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에피소드, 사건의 전개 등도 글의 분위기나 구성에 따라 개작을 시도하려고 한다.
다시 한 번 현지에서 숙식을 해가며 어렵게 채록한 구전자료를 이렇게 훌륭하게 정리한 자료집으로 편하게 전래동화를 재화할 수 있게 해주신 조희웅 교수님과 고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전통과 정서를 빛내는 전래동화 재화라는 작업에 정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
□ 생각 톡톡
톡1. 시집을 간 화롯불아가씨가 불씨를 날마다 꺼뜨린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톡2. 가죽나무 밑에서 금이 든 무쇠솥이 나왔습니다. 이 장면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오줌을 철철 눠서 불씨를 끈 총각귀신과 화롯불아가씨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근거를 들어 토론해 봅시다.
톡3.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성을 다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봅시다.
<호남타임즈신문 2018년 3월 7일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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