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행복한 노년의 삶”
여러분은 사람이 사람답게 늙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세요?
사람의 연령에는 자연연령과 건강연령 그리고 정신연령과 마지막으로 영적연령 등이 있다고 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다음은 정신연령과 영적연령을 승화시키며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자연연령과 건강연령을 채우며 인생을 보낸다고 합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보내든지, 아니면 늙어가면서 보내든지, 아니면 간에 인생길은 정말 앞을 보면 까마득하고 뒤돌아보면 허망한 것 같습니다.
'인생은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 번의 길이 인생의 길'이라고 말했던 어느 시인의 말이 기억나네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고 싶은 길도 있지만 가기 싫은 길 그리고 정말 가서는 안 되는 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정말 내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반백 년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반백 년을 뒤돌아보니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의 길인 것을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늙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이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준비하고 준비된 것에 최선을 다하여 열정을 다해서 어려운 일도 아주 멋지게 해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이들은 죽음 또한 잘 준비하고 인생의 마무리를 품격있게 성공적으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떻게 늙고 죽어야 품격있고 성공적으로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서 첫 번째 사람답게 늙어야 하겠습니다.
즉, 웰에이징,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먼저 노년의 품격을 지녀야 합니다. 노년의 품격은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노숙함과 노련함을 갖추는 일이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년의 삶을 불안해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가기 때문이지만, 오히려 노년은 지성과 영혼이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는 황금기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노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하여 노익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산행과 명상 그리고 클래식 음악과 독서와 같은 영성 즉, 신령한 품성이나 성품을 위해 생활하는 여유를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최고의 노후는 우리가 무엇을 꿈꾸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노년은 이십사 시간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며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나만의 자발적인 시간이며, 빠듯하지 않고 넉넉하고, 여유만만한 여생의 시작을 위해 팡파르를 울려야 할 때입니다.
웰에이징을 위해 노년 특유의 열정을 가져야 하며, 노년의 열정은 경륜과 품격이 따르므로 노련함과 달관이 살아 숨 쉬는 풍요한 열정이 필요한 듯합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러한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하며, 흔히 노년의 ‘사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빈고, 고독고, 무위고, 병고를 말하는데, 가난과 외로움과 할 일 없음의 괴로움은 노년에 가장 큰 골칫거리이며, 이와 함께 노후의 병고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년은 점점 의욕과 열정을 잃어가는 시기라고 속단할지 모르지만,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요? 노년 사고는 열정을 상실한 대가임을 알아야 합니다.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노년의 노후는 빈고, 고독고, 무위고, 병고가 감히 끼어들 틈조차 없을 것입니다.
노년기에 열정을 가지면 오히려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에서 70대에 의하여, 23%는 70에서 80세 노인에 의해서,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합니다. 소포클레스가 ‘클로노스의 에디푸스’를 쓴 것은 80세 때였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이 넘어서였다고 합니다. 또한, ‘다니엘 드포우’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고,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발표하였으며,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70세에 완성했고, ‘베르디’, ‘하이든’,‘헨델’ 등도 고희의 나이를 넘어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노년에 중요한 것은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대인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즉 인간관계를 ‘나’ 중심이 아니라 타인 중심으로 가져야 합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학’에서 인생에 실패한 원인에 대하여 조사를 했는데,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했다는 이유는 15%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85%는 잘못된 대인관계에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은 이기주의적 성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노욕이 생기면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폭군처럼 그리고 자기도취에 몰입하는 나르시즘, 즉, 자기도취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는 염세적이고, 운명론적인 생각이 지배하는 페이탈리즘, 즉 운명론)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대인관계는 결국 초라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관계는 중심축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물질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은 나이 들수록 초라해지고, 일 중심이나 ‘나’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도 역시 외로움에 휘말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타인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따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타인 중심의 인간관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둘째,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흔히 우리가 말하는 웰빙(wellbeing)입니다.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노년을 우리는 웰빙(well-being)이라고 합니다. 웰빙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인품이 건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웰빙은 육체적인 강건함보다는 정신적인 풍요와 여유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인자함과 포근함이 묻어나고, 사랑과 용서의 미덕으로 넘쳐나는 노후는 일-빙 즉 심신을 혹사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웰빙의 시기임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웰빙이란 우리가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것만으로는 웰빙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정신 그리고 인품이 무르익어가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최고봉이자 웰빙의 최적기이며, 노년의 녹색지수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노년의 삶은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게 그리고 생각은 달관하듯 관대하며, 소탈한 식사가 천하의 맛이며, 세상을 온몸으로 감쌀 수 있는 노년의 삶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년은 삭막하고 고독한 시기가 아니며, 절망과 슬픔을 느끼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년은 청춘보다 꽃보다 푸르러야 합니다. 젊을 때와 비교하면 노년의 외모는 형편없고, 삼단 복부, 이중 턱, 구부정해지는 허리에 흰머리, 빛나는 대머리, 거칠고 늘어진 피부, 자꾸자꾸 처지는 눈꺼풀 등..
그럼에도 노년을 앞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정신적인 풍요와 경륜으로 쌓아 올린 덕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년의 주름살 속에 아름답게 풍겨나는 인자스러움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듯 살아가면서 쌓이며 승화되는 화석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그려온 노인은 이렇듯 향기 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덕이 있는 사람, 지혜가 풍부하고 마음이 인자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사 애꿎게 실생활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대부분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고집이 세고 인색하고 마음이 좁은 노인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노년의 그런 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사랑과 용서의 삶에 인색했거나 은혜의 삶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노년은 용서하는 시기이며, 용서의 근간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을 구제하는 희망이며,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노년을 보내는 사람, 우리는 이들을 일컬어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웰빙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웰빙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인품이 건강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세 번째는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입니다.
즉, 웰다잉이란, 노년의 삶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며,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만큼 살았으니 당장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경박한 듯한 태도는 더욱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노 아야꼬’는 ‘죽음이 오늘이라도 찾아오면 힘을 다해 열심히 죽을 것’이라고했습니다. 죽음을 삶의 연장 선상에서 경건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병에 걸리면 도를 닦듯 열심히 투병을 하고, 투병과 동시에 죽을 준비도 다 해 놓고 언제고 부름을 받으면 "네"하고 떠날 준비를 할 것이며, 죽되 추하게 죽지 않도록 아름다운 죽음이 되는 ‘완전한 죽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윌리엄 컬렌 브라이언트’는 죽음을 관조하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대 한 밤을 채찍 맞으며, 감방으로 끌려가는 채석장의 노예처럼 가지 말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떳떳하게 위로받고 무덤 향해 가거라. 침상에 담요 들어 몸에 감으며 달콤한 꿈나라로 가려고 눕는 그런 사람처럼…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고차원의 인생관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인생관의 존재 여부가 삶의 질을 확연하게 바꾸어 놓는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는 세상이 정해놓은 길, 주변에서 원하는 길을 따라 걸어왔다면, 노년의 남은 삶은 어떤 길을 스스로 택하고 어떻게 걸어갈지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년의 연륜은 미움과 절망까지도 따뜻하게 품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실하게 살면서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지식도 쌓고, 사리 분별력 키우며 자신의 나이만큼 차곡차곡 쌓아가면 그것들이 쌓여 후덕한 인품이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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